청주농고 재학생 시절 전충식 지사(빨간 원 안)와 친구들. 전명욱씨 제공 오는 15일은 일제의 치하에서 벗어난 지 80주년이 되는 광복절이다.
일제의 탄압에도 충북 청주 무심천에서 독립 만세 물결을 이끈 한 고등학생의 활동이 주목 받고 있다.
일본의 억압과 착취가 최고조로 치닫던 1930년 1월 21일 이른 아침.
청주농업고등학교에서 조회를 마친 학생 200여 명이 일제히 교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청주 무심천까지 쉼 없이 뛰어간 이들의 품 안에는 태극기와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항일 전단이 들어있었다.
무심천에는 이미 청주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이 있었다. 이내 이들이 나타나자 학생들은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선봉에 선 학생은 청주농고 19살 전충식 애국지사.
고등학생 시절 전충식 지사의 모습. 전명욱씨 제공당시 전 지사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영향을 받아 항일 감정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거사 전날 밤 전 지사를 비롯해 학생 수십 명은 청주고등보통학교 박우양 지사의 집에 모여 결의를 다졌다. 집 안 곳곳은 작은 불빛도 새어 나가지 못하게 이불로 틀어막고, 귀엣말로 대화하며 일제의 만행을 수천 장의 전단에 적어 나갔다.
이들의 만세 운동은 이내 청주 지역의 학생 항일 운동의 도화선이 되면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전 지사를 포함한 학생들은 일본 경찰에 붙잡혀 구치소에 구금됐고, 어른도 힘든 모진 고문과 취조를 꿋꿋하게 버텨냈다. 오히려 전 지사는 일제의 탄압에 더욱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후 전 지사는 학교로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 경찰이 학교 측을 압박해 전 지사에게 퇴학 처분이 내려지게 했기 때문이다. 김 지사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일본에 협력하는 이웃의 밀고와 동료의 핍박이었다.
전충식 지사의 아들 전명욱(왼쪽)씨와 외손자 조진서씨가 전 지사의 당시 사진을 보고 있다. 임성민 기자전 지사의 아들 전명욱(76)씨는 "아버님은 일본인들보다 친일파와 같은 일본에 협조하는 세력들한테 더 고초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며 "이들에게 감시받으며 독립운동을 이어 나가야 하는 현실에 무척 괴로워하셨다"고 회상했다.
성인이 된 전 지사는 교사가 돼 학생들을 일깨워 주기로 마음먹었다. 전 지사는 1937년 동성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독립 정신과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데 매진했다.
정부는 지난 2020년 8월 15일 광복 75주년을 맞아 전 지사에게 독립 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작고한 지 43년 만에 업적을 인정받은 것이다.
청주농고는 1956년 개교 45주년을 맞아 전 지사를 비롯해 항일운동에 참여한 당시 학생 20여 명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고, 해마다 기념식을 열어 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