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충북CBS 라디오 <시사직감> 청주 FM 91.5MHz, 충주 FM 99.3MHz (17:00~17:30)
■ 제작: 이은영 PD
■ 진행: 김종현 기자
■ 대담: 이상훈 변호사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전 상임위원)

[오프닝]
◇ 김종현>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사직감>, 저는 김종현 기잡니다. 내일(15일)은 제80주년 광복절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긴 압제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주와 독립을 되찾은 날입니다. 그날의 환희는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그리고 그 정신은 지금도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복절을 맞는 이 시점에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번 던져보게 됩니다. 우리는 자유와 정의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라고 말이죠. 또 분열과 대립을 넘어 하나 된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광복의 정신이 다음 세대의 삶에도 계속 온전히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하고 조명하며 그 뜻을 행동으로 이어가는 것,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무가 아닐까 합니다. 2025년 8월 14일 목요일, <시사직감> 문을 열겠습니다.
[코드음악]
◇ 김종현> 오늘 <시사직감>, <직감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전 오프닝에서 광복절 이야기로 프로그램 시작을 했는데요. 내일은 광복 80주년입니다. 그런데 해방의 기쁨 뒤에는 지금도 다 풀리지 않은 상처와 숙제가 남아 있죠.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과 위안부 피해. 시간이 흘러도 치유는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는 해방의 기쁨 뒤에 한국전쟁과 민주화 과정 등 격동과 갈등의 현대사 속에서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 인권 침해 등 숱한 상처를 얻었고 역시 오랜 기간 제대로 된 치유 없이 살아왔습니다. 이를 해결하며 과거사에 관한 진실을 밝혀서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것을 슬로건으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활동해왔고요. 2기 진실화해위가 지난 5월 26일 공식 조사를 마무리했고, 오는 11월이면 모든 활동을 종료합니다. 2기 진실화해위는 지난 2021년 조사를 시작한 후 4년 동안 전체 사건 2만 924건 가운데 1만 8808건을 처리했고요. 그 과정에서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굵직한 사건을 여럿 해결했는데요. 3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조속한 출범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사직감>, 과거사 청산의 의미와 사회적 치유와 회복을 위한 진실화해위의 활동까지 두루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 갖겠습니다. 2기 진실화해위에서 인권 침해 사건을 총괄했던 전 상임위원이시죠. 이상훈 변호사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변호사님, 안녕하십니까?
◆ 이상훈> 안녕하십니까?
◇ 김종현> 앞서서 소개를 좀 하긴 했습니다만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2006년 1기가 그 시작이었죠?
◆ 이상훈> 예. 그렇습니다. 지금 앵커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지금 우리 이제 광복 80주년을 맞아 가지고 그전에 이제 식민지배 당했죠. 다음에 내전이 있었죠. 그 다음에 독재에 있었죠. 그런데 여기까지는 이제 많은 나라 식민지배를 당했던 나라들이 이런 경로를 가는 나라는 굉장히 많았습니다. 아프리카에 이런 나라 그런 나라 같은 경우는 대부분 식민지배 독립한 다음에 내전 겪고 독재까지 겪는 나라가 꽤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굉장히 독특한 게 그다음에 고도 성장, 압축 성장을 하게 된 게 굉장히 특징이죠. 그래서 그다음에 지금 계속 이제 현재도 굉장히 발전된 나라라고 하고 있는데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고도 성장과 압축 성장을 하는 사이에 굉장히 많은 분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시되는 그런 결과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또 이제 국가에 의해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의문사라든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의 고문, 가혹 행위라든지, 그래서 그러한 전반적인 어떤 우리의 아픈 과거를 종합적으로 이제 그 한번 점검해 보자라고 해서, 그전에는 의문사위원회, 검찰 과거사 위원회 이렇게 부분적으로 있었는데 통합해 가지고 이제 포괄적으로 한번 과거사를 정리해 보자라고 해서 출범하게 된 겁니다.
진실화해위 제공◇ 김종현> 이제 진실화해위 출범의 배경, 그리고 우리 걸어온 역사도 정리를 좀 해 주셨는데요. 그 1기 위원회가 2006년 4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활동을 했고요. 그 10년 만인 2020년에 2기가 출범을 했는데요. 그 피해자와 희생자 유족들의 요구가 굉장히 컸다고 알고 있습니다.
◆ 이상훈> 굉장히 컸습니다. 이게 활동이 불과 5년도 안 돼 가지고 끝나는 바람에 이 분들은 전부 다 평생의 한인데 평생의 한인 그 수많으신 분들을 5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하다 보니까 남겨진 사건이 너무나 너무 많았고요. 그리고 실제로 이게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까지 계속 이 진행되는 그런 피해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은 이제 많이 없어졌지만 연좌제, 그런 분들 같은 경우 피해자 분들 같은 경우는 유족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본인의 피해로 그렇게 평생을 안타깝게 사신 분이 많아서 그러한 사건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조사를 해야 된다라는 요구가 굉장히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10년 동안 그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2020년도에 출범하게 됐습니다.
◇ 김종현> 그렇군요. 그 피해를 당하신 분, 또 그 가족들이 신고하는 것이 조사의 첫 단계가 되는 건가요?
◆ 이상훈> 그렇습니다. 2기 때 10년에 걸쳐 가지고 이제 다시 한 번 2기를 해서 1기 때 못했던 사건, 그리고 1기 때 부족했던 사건 같은 경우를 2기 때 많이 했는데 그때 맨 처음에 이제 그 어떤 사건을 다루냐 했을 때 그 피해자분들의 신고를 받아서 그 신고에 기초해서 한 번 개별 사건을 한번 종합적으로 알아보자라고 그렇게 사건이 진행이 됐습니다.
◇ 김종현> 네, 그리고 이제 2기 진실화해위에서 이상훈 변호사께서 상임위원으로 활동을 하셨는데요. 변호사님께서는 경제전문 변호사신 걸로 알고 있고요. 경제 개혁과 관련된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아는데 진실화해위에서 활동하시게 된 스토리도 좀 궁금합니다.
◆ 이상훈> 예, 제가 98년도부터 이제 변호사 활동하면서 주로 이제 시민단체 활동을 계속 여태까지 계속 해 왔고요. 20~30년 동안, 근데 주로는 재벌 개혁과 같은 제 전문 분야인 경제 쪽을 많이 했는데 옛날에는 지금처럼 변호사가 많지 않아가지고요, 그냥 이것저것 다 했어요. 그 노동도 하고 복지도 하고 이제 과거사 같은 경우도 이제 맨 처음에 98년도에 의문사법 나올 때 그때도 제정 관여했었고요. 그러다가 이제 마침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민주당, 지금은 여당인 민주당의 추천 상임위원이 필요하다라고 해서 때마침 이제 그 복지와 관련된 사건이 되게 많았거든요. 지금 형제복지원 같은 이런 사건이라든지, 해외 입양이라든지, 이런 복지와 관련된 사건도 많았는데 복지도 좀 아는 변호사가 좀 필요하다고 했는데 마침 또 저도 복지도 잘해 가지고 그래서 이제 상임위원으로 활동이 됐습니다.
◇ 김종현> 그러셨군요. 2기 진실화해위에서 인권 침해 사건을 총괄하는 2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과거사의 어떤 부분들, 어떤 사건들 다루셨습니까?
◆ 이상훈>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이제 두 개의 팀으로 나뉘었고요. 상임위원으로 나눴고 이제 하나는 한국전쟁을 다루는 게 1상임위원이고요. 그리고 제가 담당한 2소위원은 일단 인권, 한국전쟁 이외에 모든 인권 침해 사건을 전부 다 전반적으로 다루었습니다.
◇ 김종현> 예, 그 이제 모든 일들이 경중을 가릴 일들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래도 이제 널리 알려진 혹은 큰 조명을 받았던 사건들을 말씀을 좀 해 주신다면요?
◆ 이상훈> 아무래도 이제 개인적인 사건이더라도 그분에게는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이기 때문에 피해자 수가 얼마 안 되고 피해자가 많고 이걸 가지고 말씀하신 대로 경중을 따지면 안 되지만은 만약에 피해자가 많은 사건으로 봐가지고는 대표적인 것 같은 경우는 아까 말씀드렸던 형제복지원이라든지, 아니면 각종 수용시설이 있는데 그거 말고도 삼청교육대 사건, 납북 귀환어부 사건이라고 해서 북한으로 이제 끌려갔던 어부님들이 남한으로 내려왔을 때 다시 또 겪었던 고초, 납북 귀환어부 사건도 많고요. 그거 말고도 굉장히 많은 해외 입양 사건 같은 경우도 우리나라가 이제 압축 성장을 하는 사이에 이제 여러 단위로 이제 아이들 같은 경우 해외로 한 10만 명 이상이 이제 입양이 됐는데 그런 사건도 전반적으로 처음으로 다루는 그러한 성과를 이뤘습니다.
지난 2023년 6월 재일동포간첩단 관련 피해자 면담. 진실화해위 제공◇ 김종현> 몇 가지 좀 생각나시는, 어떻게 좀 해결이 됐고, 어떤 반향이 있었고 이런 것도 소개 좀 해 주시죠. 방급 언급해 주셨던 사건들 가운데서.
◆ 이상훈> 마침 8월 셋째 주에 이제 났던 것이 저희가 이제 났던 사건 같은 경우 아까 저기 삼청교육대 사건 이외에도 저희가 지금 형제복지원 사건 같은 경우 그런 거 같은 경우라든지, 그거 다 이외에 여러 가지 시설 사건들이 있었어요. 선감도 사건이 있었고 그런 것 같은 경우는 소송에서 진행된 게 있는데 그거가 이제 1심, 2심에서 난 다음에 이제 정부에서 국가에서 그거를 상소를 더 이상 다투지 않겠다라고 해서 확정이 되는 그런 사건도 있었고요. 현재 지금 저희가 2기에서 이제 진행됐던 사건 진실이 규명된 사건을 기초로 해 가지고 개별 소송 같은 경우가 진행이 되고, 거기에 따라 가지고 실질적인 구제 절차가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 김종현> 네, 알겠습니다. 충북지역에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조사한 사건들이 있었죠? 자세히 좀 소개 부탁드립니다.
◆ 이상훈> 충북지역이라고 해서 아주 독단적인 그런 사건이라기보다 대부분의 사건 이제 다수의 피해자가 있는 사건, 거기서 충북지역에 있는 피해자분들이 이제 같이 역시나 이 같이 있는 사건들이 대부분 많아 오다 보니까 이게 충북대학이 근처에 있더라고요. 충북대학교 같은 경우도 예를 들어서 80년대 전두환 정권 같은 경우에서는 국립대학 사범대학에 나오게 되면 임용을 먼저 받았거든요. 옛날에는 임용을 받았는데 대학교 때 운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임용에서 제외된 사건들이 있어요. 그런 피해자분들 중에서 제가 보니까 충북대 같은 경우도 충북 사범대학 같은 경우에 6분이 임용이 안 되가지고.
◇ 김종현> 피해를 보셨군요?
◆ 이상훈> 그분도 이제 피해 구제가 이제 됐고요. 대학교 때 운동했다 해가지고 이제 임용이 못 되는 것도 있지만 임용이 돼가지고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전교조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된 그런 분들도 있었는데 충북 지역도 한 24분 정도가 있었습니다.
◇ 김종현> 전교조 해직 교사분이요?
◆ 이상훈> 그 대표적인 게 도종환 전 의원 전 장관님도 역시 마찬가지로 교사로 활동하다가 이제 해직이 된 그런 경우가 있었고요. 삼청교육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삼청교육대도 피해자 분 중에서 충북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꽤 많이 그런 분이 있었고요. 그래서 전반적인 한국전쟁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다수 있었는데 그거 말고 조금 충북지역의 특징이 좀 있다고 하면 한국전쟁 때가 조금 특징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두 가지 방향인데 하나는 충북 지역이 이게 특징이 지리적으로 중심에 있지 않습니까? 중심에 있다 보니까 한국전쟁이 일어나 가지고 피난을 가게 되면 이쪽 지금 지나가는 게 빠르잖아요. 그 돌아가면 안 되니까. 그러다 보니까 피난민 사건이 되게 많았고요. 그거 말고도 이제 여기가 되게 산세가 험하다 보니까 여기가 중간에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에 밀고 내려왔다가 다시 수복이 되면서 올라가는 사이에 왔다 갔다 하면서 이제 소위 말하는 낮에는 이렇게 낮과 밤이 바뀌어 가지고 이제 공격하는 그런 류의 사건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던 게 충북지역의 특징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국전쟁 때 피해자들이 굉장히 많았고요.
8.15 광복이니까 대표적으로 한번 사건을 한번 예를 들면서 한번 설명을 드리면, 충북지역에서 당시 홍가륵 선생님이라고 있었습니다. 홍가륵 선생님 같은 경우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 의열단으로 가입하셔서 거기서 항일운동을 되게 열심히 하시다가 3년 정도 이제 교도소로 가시다가 광복이 된 다음에는 진천군청에서 공무원으로 활동 중이었어요. 활동했었는데 그 당시에 45년도부터 50년도까지 굉장히 혼란기였기 때문에 그때 때마침 어떻게 시국 사건으로 또 이 교도소에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한국전쟁이 딱 일어난 다음에 안타까운 거는 당시에 이승만 정권 같은 경우에는 극도의 반공주의가 좀 있어서 그때 이제 물러나면서 교도소에 있는 이렇게 시국사범으로 들어간 사람 같은 경우는 북한에 동조할 수 있다라고 해서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을 그냥 쏴 죽이고 가려고 그랬거든요. 그때 이제 홍가륵 선생님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희 진화위의 결정 중에서 하나가 한국전쟁 때 국가폭력으로 국가에 의해서 오히려 이제 그것이 피해를 보신 분들, 이제 그렇게 북한으로 도주될 수 있다는 그런 위험성으로만으로 재판 없이 바로 사형으로 그렇게 되는 분들을 진실 규명했는데 이 독립운동을 하셨던 홍가륵 선생님도 안타깝게도 나중에 이제 보훈부로부터도 훈장을 받았지만 그 당시에 한국전쟁 때 이제 교도소에 있었다가 이제 사망을 당하는 그런 경우도 있었고요.
지난 2023년 4월 충주 국민보도연맹 사건 유해발굴 개토제 참석자들이 유해발굴을 위한 시삽을 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이거 말고도 충북 중에 보도연맹 사건 같은 경우가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보도연맹 혹시 아실지 모르겠는데 보도연맹이라고 해서 이제 혹시 그러니까 좌익에 빠진 사람들을 관리하겠다는 것을, 보도연맹부라는 걸 따로 만들어서 그래서 당시 한국전쟁 때 그 명부에 있던 사람들 같은 경우에 재판 없이 죽인 경우가 굉장히 많았는데요. 제가 대충 보더라도 저희가 결정한 거가 청주, 충주, 괴산, 단양, 영동, 보은, 옥천, 제천 다 있었습니다. 여기에 보도연맹원들이 보도연맹부에 있었던 분들 같은 경우에 이분들은 좌익도 아닌 분들 굉장히 많아요. 보면 이제 돈 준다고 해가지고 거기 좌익에 가 보도연맹에 가입하신 분들도 굉장히 많았고요. 그러다가 이제 같이 전쟁 틈에 어떻게 국가에 의해서 국가의 군인이나 경찰에 의해서 사망당하신 분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충북 쪽에 독특한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 김종현> 아까 지리적인 특징도 말씀을 좀 해 주셨고 보도연맹 학살 사건까지 들어봤습니다. 그리고 이제 피해자가 있으니 분명히 가해자가 있을 테지요. 그런데 그 가려진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참으로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습니까?
◆ 이상훈> 굉장히 어렵죠. 그러니까 지금 말씀하신 대로 가해자를 찾는 거는 당연히 어렵고요. 예를 들어서 고문한 경찰 고문을 당했다 경찰 그런데 그 고문한 사람이 누군지 지금도 모를텐데 그 당시에 그걸 찾는 건 되게 어렵고요. 시간을 많이 들여가지고 당시에 예를 들어서 재직한 사람들의 직원 명단 확보하고 현재의 주소 확보해 가지고 접촉을 하게 되면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게 전부 다 부인하는 거죠. 당연히, 당연히 이제 본인이 했던 건 당연히 부인하고요. 그 옛날 어렴풋이 나는 옛날 기억이나 어렴풋이 남아 있는 기록 가지고 당시에 이제 파편적인 진실을 그리고 종합적으로 이제 결론을 내는 건 굉장히 어려운 그런 작업인데 어떻게 어떻게 조사관님들이 열심히 하셔가지고 어떻게 많은 사건을 좀 해결을 했습니다.
◇ 김종현> 그 조사관분들, 인력은 충분합니까?
◆ 이상훈> 저희가 2기 같은 경우는 한 200명 조금 안 되는데요. 지금 반반 정도로 돼서 지금 이제 파견 나온 공무원도 있고 새로 뽑은 공무원도 계시는데 지금 남아 있는 사건이 꽤 많이 있는 상황입니다.
◇ 김종현> 아직도 미해결 사건이.
◆ 이상훈> 굉장히 많고요. 다만 저희가 한번 자랑을 하자면 이 국가기관이고 여기 계신 조사관들이 전부 다 공무원 신분인데 우리나라에 제가 다른 조직 같은 경우에도 어떤 공무원 조직이 있어도 이렇게 종합적으로 전문가들이 다 모여 있는 조직이 없어요. 종합 전문가라고 하면 이제 법률 전문가도 있고요. 변호사, 법대 이렇게 나온 사람도 있고 역사학자들 되게 많고요. 사회학자도 되게 많고요. 그래서 심리학자들도 있어요. 심리학 공부하시는 분도 있고 해가지고 종합적으로 이제 다양한 이 사건, 사건 처리를 위해서 부분적으로 이렇게 전문가 되는 검찰, 경찰, 이런 것도 있고 역사 교육 이런 게 있지만 여기 위원회 같은 경우에서는 이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심리, 역사, 그리고 사회학, 그리고 법, 이런 거를 전부 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모여가지고 하나의 완결된 어떤 결론을 내리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아마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어떤 조사 기구 중에 국가 기구 중에서 이렇게 인력이 좀 이렇게 종합적으로 잘 돼 있는 조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굉장히 아까운 조직입니다.
이상훈 변호사. 충북CBS◇ 김종현> 네, 그렇군요.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활동을 전개를 하시다 보면 그 이념, 사상의 갈등, 또 요즘 이제 흔히 보여지는 모습이죠. 보혁 충돌로 인해서 그 조사 자체가 어려웠거나 혹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중단되는 사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 이상훈> 많이 있었고요. 가장 기억이 생생한 제가 이제 4월 말까지 하다가 임기 만료됐고 5월달에 조사가 종료됐는데 4월 초에 했던 사건을 예를 들자면 어떤 식으로 이게 보혁 갈등, 이런 게 좀 짐작할 수 있을 텐데 예를 들자면 한국전쟁 때 이제 완주 쪽에 있는 피해자 분인데 여기 같은 경우에서는 국군이 이제 그 빨갱이들을 토벌한다고 그 산골에 있는 마을에 이제 그 토벌 작전을 했거든요. 들어왔어요. 그런데 거기 마을 주민들이 그걸 도망을 갔습니다. 도망을 가고 국군이 막 올라오는데 그래서 그때 토굴에 이제 여러 분이 들어가셨어요. 그런데 지금 저희가 이제 조사를 신청한 분은 67세 되신 분이었는데 할아버지 분이셨는데 들어갔다가 군인이 나와라 나와라 두 번 경고를 했어요. 안 나왔어요. 그래서 두 번 하나도 안 나왔어요. 그다음에 국군이 거기다가 토굴에다가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사망을 했어요.
거기서 이제 서로 간에 의견이 다른 겁니다. 예를 들자면 이제 야당 추천 민주당 추천 위원들 같은 경우는 아니 토굴에 있다가 안 나왔다고 해 가지고 그렇다고 해 가지고 바로 수류탄 던져가지고 사망시키면 재판도 없이 이 이거야말로 국가폭력 아니냐, 저희는 이건 피해라고 봤던 거고 국가폭력 피해로 봤던 거고 이제 그 당시 이제 국민의 힘, 그 당시에 이제 여당 같은 경우에서는 추천 거기 위원들, 특히나 이제 그 당시 위원장님 같은 경우는 아니 왜 빨갱이 토벌하려고 국군이 왔는데 왜 빨갱이가 아니라면 왜 토굴에 들어갔냐, 그러니까 그 토굴에 들어간 것 자체가 이상한 거고 나오라고 했는데 왜 안 나왔냐, 이거는 사망 경위가 불확실하다. 이거는 국가 폭력이라고 부르는데 확정 짓지 못한다라고 조사 중지 났습니다.
◇ 김종현> 조사가 중지가 됐군요.
◆ 이상훈> 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이게 저희 이제 저희 민주당 추천 위원들 같은 경우는 재판 없이 그렇게 군인이나 경찰이 사람을 죽이면 이건 안 되는 거 아니냐라고 보는 거고 이제 그 당시에 보수적인 여당 의원들과 추천 의원들 같은 경우에서는 그 당시에 이제 활동을, 소위 말하면 부역자 잡기라고 저희가 표현하는 게 이 사람이 진짜 빨갱이 짓을 해가지고 그렇게 그걸 다 봐야 되는 거 아니냐. 매 사건마다 한국전쟁 사건 같은 경우에서는 이런 것이 계속 부딪히는 거예요. 다양하게. 그래서 이런 좌우의 대립이라든지 보혁 갈등이라든지 그것이 사건을 통해가지고 계속적으로 나타났습니다.
◇ 김종현> 네 2기 진실화해위 어쨌든 그 지난 5월 26일에 공식 조사 기간이 종료가 됐고요. 오는 11월이면 활동이 마무리되죠. 그 나머지 기간은 어떤 작업이 남아 있는 건가요?
◆ 이상훈> 현재 남아 있는 거는 저희가 조사한 사건들을 종합적으로 이제 한 권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이 지금이 남아 있구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김종현> 네, 이상훈 변호사님께 소회 좀 여쭤보겠습니다.
◆ 이상훈> 이게 원래 진실 화해 과거사위원회이기 때문에 진실을 1차적으로 밝히고 그다음에 화해로 넘어간다라는 것이 이제 위원회의 방향인데 실제로 개별 사건을 하다 보면 진실은 그래도 나름대로 조사관님들의 노력으로 많이 밝혀지기는 했는데 화해까지 이어가기에는 굉장히 갈 길이 멀다라는 것을 이제 좀 많이 느꼈고요. 아직까지. 이제 그 당시에 이제 저희가 가장 안타까운 것이 이제 광복이 되고 강점기에서 벗어났는데 그 다음에는 이제 이념 대립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이게 저희의 역사가 굉장히 왜곡되는 그런 상황이 있었는데 그게 아직까지 그게 벗어나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개별 사건을 통해서 많이 좀 느끼게 됐고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전임 윤석열 전 대통령 같은 경우는 기본 생각이 그거지 않습니까? 반국가 공산 세력이 진보를 위장해서 허위 선동하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이렇게 딱 보니까 개별 사건마다 전부 다가 이념으로 이제 좌우 간의 그런 사건으로 보다 보니까 사건이 제대로 진실까지 나가기에는 굉장히 진실은 밝혔지만 화해까지 나가기는 좀 어려운 그런 구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좀 과도한 좌우 대립은 이제는 조금 좀 지양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실화해위 제공◇ 김종현> 네, 알겠습니다. 방금 말씀해 주셨듯이 화해까지 가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다, 이런 말씀을 해 주셨고요. 그리고 아까 소개해 주셨지만 수두룩한 미해결 사건들이 있다는 말씀도 해 주셨는데 그래서인가 이제 3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조속한 출범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거든요. 어떻게 보십니까?
◆ 이상훈> 예. 제가 지금 임기 만료된 이후에 3기 출범에 대한 굉장히 빠른 속도가 지금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10년 동안 기다려 가지고 2기 진실화위원회가 출범이 됐다가 중간에 윤석열 정부로 바뀌면서 이게 좀 약간 정상화가 안 되고 좀 이렇게 약간 이상한 부분으로 흘러가지고 이제는 좀 제대로 된 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자라는 그런 움직임이 이제 새로운 위원회를 출범하자라는 움직임으로 발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민주당 집권 여당에서는 좀 그런 의지가 되게 강한 걸로 알고 있고요. 그래서 아마 3기 쪽으로 가서 좀 정상화된 어떤 조사가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지고요.
◇ 김종현> 네, 그리고 이제 만약 3기 진실화해위가 출범을 한다면 그 보완 내지는, 이 부분에 대한 변화, 개선은 좀 필요하다 이런 부분이 좀 있으면 제언을 좀 해 주시죠.
◆ 이상훈> 그냥 보완 뭐 이렇게 거창하게 발전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요. 그냥 저는 제가 이제 있는 동안에 지켜보니까 그냥 제가 보기에는 3기 진화위는 2기 진실화해위의 정상화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이 윤석열 정부 들어선 다음에 정말 새로운 위원장 체제 하에서 굉장히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고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분위기였거든요. 대표적인 것이 조사관들이 막 조사를 열심히 하는 거 열심히 하니까 그거를 좀 억제하기 위해서 검찰이나 경찰 조사관들을 다 동원해 가지고 막 감사하고 그래서 굉장히 위축된 분위기에서 숨죽여서 조사했던 그런 경험도 있고 그리고 유족들과의 어떤 접촉이라든지 이런 것도 굉장히 좀 소원했고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와 유족들 간의 어떤 관계, 그 조사관들의 조사의 열정 이런 데 있어 가지고 굉장히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을 하고 그 과정에서 굉장히 어렵게 조사를 했기는 했지만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3기 진실위원회는 물론 발전적으로 돼야 되겠지만 일단은 좀 2기 위원회의 정상화가 이루어져야 된다라는 그것만 해도 굉장히 발전적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김종현> 이제 연결되는 질문일 수 있겠는데요. 콕집어 한번 좀 여쭤보겠습니다. 박선영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은 최근에 그 유족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3기 진실화해위의 출범보다는 2기 위원회가 연장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이 회의적인 입장을 피력한 걸로 아는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 말씀해 주시죠.
◆ 이상훈> 굉장히 곤란한 질문인데 전임 김광동 위원장이나 지금 현재 박선영 위원장 좀 약간 지지를 못 받는 게 여태까지 그런 게 있었고요. 그러니까 유족의 입장을 고려한다고 했는데 제가 접촉한 유족분들이나 피해자 분들 같은 경우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제대로 된 위원장 밑에서 제대로 된 조사를 받고 싶다라는 것이 더 많은 입장이어서 유족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2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박선영 위원장이 물러나시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좀 적절치는 않을 것 같고요. 지금이라도 정상화된 위원회가 좀 진행이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입니다.
◇ 김종현> 네 알겠습니다. 박 위원장에 대한 위원회 내부 반발과 불만을 알 수 있는 보도도 요즘 잇따르고 있더군요. 알겠습니다. <시사직감> 오늘은 2기 진실화해위에서 인권 침해 사건을 총괄했던 전 상임위원 이상훈 변호사와 이야기 나눠보고 있는데요. 변호사님, 이제 약간 다른 질문일 수 있는데요. 그 일각에서는 진실화해위의 활동을 놓고 이제 과거에 얽매이는 일 아니냐, 이렇게 좀 그렇게 보는 시각도 있을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해서 한 말씀해 주신다면요.
◆ 이상훈> 하나 예를 들자면요. 제가 저희가 이제 새롭게 2기 위원회에서 했던 사건이 해외 입양 사건 그러니까 과거에 우리 아이들인데 우리 아이들을 우리가 돌보지 않고 해외로 입양한 수십만 명의 해외 입양 사건을 했을 때 조사를 위해서 제가 덴마크를 이제 현지 조사를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덴마크에 가 보니까 그러니까 한인회, 그러니까 우리나라 국적이거나 국적을 가졌던 분들이 모여 있는 한인회 같은 경우가 한 600명밖에 안 돼요. 그런데 그 당시에 덴마크에 해외 입양 대신 현지 여러 가지 여러 활동하신 분이 그때 6천 명에서 8천 명이었어요. 10배가 더 많더라고요. 그러니까 저희가 한인 네트워크 한인의 뿌리, K-팝 데몬 헌터스 같이 무슨 한인의 뜨거운 이런 거 하지만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지금 현재 덴마크에 이제 계시는 그리고 해외 입양 가가지고 계시는 한인회보다도 10배나 많은 분들이 양가적인 감정이에요.
그러니까 자기를 버렸던 조국이지만 그렇지만은 한국인으로서 뭔가 좀 느끼는 게 많고 애틋한 마음도 있고 그럼 저희가 지금 선진국의 대열에 지금 들어섰다고 하는데 그렇게 수십만 명이 지금 나가신 분들이 한국을 우리나라를 원망하면서 계속 지내는 것이 맞는 건지, 아니면 그분들이 그래도 우리 조국이다라고 하면서 그 정을 지금이라도 좀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고 선진국의 어떤 위상에 맞는 건지, 그런 걸 따진다고 하면은 이런 과거사가 그냥 과거의 문제에 대한 인권 침해 여부를 조사한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나갈 방향 해외입양 하나 사건뿐만 아니라 정말 인권 선진국으로 나가게 됐을 때 우리나라의 어떤 세계적인 글로벌한 위치에서 차지하는 그런 어떤 긍정적인 측면 이런 걸 본다면 과거사가 단지 과거사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약간 피로감이 좀 있는 분들이 있는 것도 알고 있지만 조금 달리 생각한다면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 중에서 중요한 어떤 전환점도 될 수 있다 긍정적인 면도 많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왼쪽부터 이상훈 변호사, 김종현 앵커. 충북CBS◇ 김종현> 알겠습니다. 말씀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다 됐습니다. 덕분에 진실화해위 활동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 시간이었고요. 변호사님 끝으로 청취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좀 해 주시죠.
◆ 이상훈> 예. 그 한강 작가님의 말씀을 한번 좀 같이 공유했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한강 작가님이 이제 과거사, 이제 '소년이 온다'하고 '작별하지 않는다', 그 과거사 사건을 이제 과거사와 관련된 소설을 쓰면서 그때 맨 처음에는 한강 작가님이 이렇게 생각했다고 해요. 이제 현재 있는 사람들이 과거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 살아있는 사람이 죽어 있는 사람들을 더 살릴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소설을 썼다가 소설을 쓰면서 이제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현재가 과거를 돕는 게 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돕는 거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거고 이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고.
이러한 생각이 저희 12.3 비상 계엄 때 딱 느꼈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 제가 주위에 방첩사에 지금 현역 계시는 분들이 저한테 12.3 계엄 이후에 했던 말이 되게 인상적인 게 자기도 방첩사에 있을 때 교육을 많이 받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12월 3일날 비상계엄이 있었다는 것을 방송으로 딱 보고 이건 아니다, 이게 왜 비상계엄이냐, 느꼈고 그게 이제 군인이나 경찰의 소극적 저항으로 나왔던 대처가 소극적으로 됐던 것이 그런 거 자꾸 교육받고 이거 나쁘다 이건 아니다. 부작용을 계속 이제 느끼고 막 이러니까 그러한 또 다른 사건이 발생을 했을 때 과거와 같은 어두운 그런 그런 기억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제 과거사 같은 것이 한강 작가의 말씀처럼 '산 자가 죽은 자를 이제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그런 역사의 재발을 아픈 역사를 재발을 방지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 김종현> 네, 이상훈 변호사님, 오늘 인터뷰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상훈> 예. 고맙습니다.
◇ 김종현> <시사직감> 오늘은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직감 인터뷰 통해서 특별한 분 만나봤습니다. 해방의 기쁨 뒤 이어진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상처와 그 치유를 위해 활동했던 분이죠.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전 상임위원 이상훈 변호사와 여러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2025년 8월 14일 금요일 전해드린 <시사직감>,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프로듀서 이은영, 진행에 저 김종현이었습니다. 저희는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행복한 저녁시간 되십쇼.